책상위의 세입자 25)자해

^2020. 7. 25. 02:25

그간 백작이는 잘 살고 있었다.

잘 살고 있었다고 하기에는 몸에 큼지막한 종양을 달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 나는 이제 그게 종양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이상이 나타난 부위가 좁아서 이게 소위 말하는 cotton같은 증세인지 살짝 볼록하게 나온 것이 종양인지, 혹은 betta lump로 검색하면 자주 나오는 의견처럼 사실은 abscess인지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는 하나씩 소거해나가다보니 역시 종양이 맞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어릴 때 해부할 때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아끼는 애완어가 되어서 그런지 지금 나에게는 야매수술을 할 배짱이 없다.

다행히도 종양이 하루하루 커져나가는데도 녀석이 지내는데는 불편함이 없어 보이고 식욕도 아주 넘쳐나서 그저 살아가는 동안 고통만 없길 바랐다. (다른 베타 종양을 가진 사람들의 글로도 종양이 커지는게 딱히 베타의 식욕을 저해하거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베타 물고기의 종양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 검색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종양 뿐만 아니라 아주 유명한 병ex. 솔방울병 을 제외한 증상 혹은 평소 관리법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여 정확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

 

그나마 이 녀석의 경우에는 자해증세가 나타난 적은 별로 없었는데

어제 보니 꼬리가 약간 너덜해져 있고(어항에 상처를 입힐만한 구조물이 없는데도 말이다!)

결정적으로 오늘 보니 등지느러미가 아주 파먹은 것처럼 걸레짝이 되었다.

정말로 지느러미를 먹기라도 하는 걸까?

그렇게 큰 조각(?)이 없어졌는데 어항에는 녀석의 등지느러미 조각이라고는 흔적도 없다.

단지 물을 갈아줄 때 보니 지우개 떼 정도 길이와 얇기의 흰 조각들이 흩날려 혹시 이것이 녀석의 지느러미 조각인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일전에도 등지느러미가 갈라진 적은 있었지만 그 땐 누가 봐도 피자조각을 떼어낸 것처럼 중간만 쩍하니 갈라진거라 크게 걱정이 들지 않았는데 오늘 아주 걸레짝이 된 지느러미를 보니 덜컥 겁이 난다.

 

수질 때문인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수질하락이 동반하는 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팝아이 등의 증상은 물론이고 녀석은 여전히 내 손이 움직이기만 하면 나에게로 달려들고 유유히 벽면을 헤엄치고 밥도 잘 먹고 벽에 치받거나 하지도 않는다.

 

결국 혹 종양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자해가 시작된 것일까봐 두렵다.

혹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인 경우에도 일단 자해가 습관으로 들면 고치기 쉽지 않다고 알고 있다.

지난 주 리트를 치면서 하루 정도 밥 주는데 소홀했던 경향은 있지만 그 뒤로는 전혀 부족함 없이 조금씩 자주 주고 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제발 일회성 자해이길 바란다.

그리고 녀석이 오래오래 내 곁에 남아있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급하게 1/3환수를 추가했는데 녀석의 기분이 사뭇 좋아보인다.